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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개론] 디스플레이 산업의 역사

        2016. 04. 22

        LG케미토피아 화학개론 이정노/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연구센터 전자부품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에서 재료공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 전자부품연구원 디스플레이융합연구센터 수석,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디스플레이 PD로 활약 중이며 2010년 지식경제부 장관상, 2014년 산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든 디스플레이, 추억속의 브라운관에서부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OLED까지 역사가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디스플레이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디스플레이 산업의 전방과 후방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을 리드하도록 뒷받침하고 있는 산업 영역에 대하여 소개해보려고 한다.


        세상을 보여주는 ‘특별한’ 네모 상자

        디스플레이의 역사는 곧 TV의 역사와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흑백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61년으로 선진국들과 비교해 짧은 편이다. 소리만 들려주는 라디오와 달리 네모상자 안에서 건물, 자동차, 사람이 나와서 웃고 떠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저녁시간마다 마을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으로 모여들어 TV를 보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말그대로 당시의 TV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매개체이자 ‘특별한 것’이었다.

        지금은 추억이 된 브라운관TV

        지금은 추억이 된 브라운관TV

        국산 흑백TV는 1966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출시한 VD-191이 최초의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인치의 화면을 가진 브라운관TV다. 당시 쌀 스물일곱 가마니에 해당하는 아주 비싼 가격이었다. TV가 있는 집은 부자집이라는 말이 나올만 했다. 브라운관의 원리는 진공관 내의 전자총에서 방출된 전자가 형광체와 부딪혀 빛을 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였다. 무거우면서도 화면이 볼록한 브라운관TV는 이제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최초의 혁신, ‘색’을 보여주다

        흑백TV를 보면서 가장 많이 보던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스포츠 경기인데, 문제는 누가 우리편이고 누가 상대편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왜일까? 당연히 색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은 빛의 삼원색인 적, 녹, 청색을 이용한 컬러TV로 이어졌다. 컬러 브라운관TV는 영상의 밝기 신호만 전송하던 것을 색 신호를 함께 전송하며, TV에서는 이 신호를 받아 전자가 편향부를 통하여 섀도우 마스크 사이사이에 형성된 적, 녹, 청색 형광체에 부딪히게 함으로써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작은 컬러 텔레비전 모형들이 모여있다.

        컬러TV의 등장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1954년 미국의 첫 컬러 방송을 시작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처음 컬러 시험 방송을 시작하였다. 물론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도 금성사, 아남전자와 같은 기업에서 컬러 TV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지만, 주로 수출을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온 국민이 컬러TV를 집에서 보게 된 시점은 약간 늦은 편이었다. 컬러TV를 통해 뿜어져나온 화면의 역동성은 더 좋은 디스플레이 기술의 개발을 불러왔다. 

         

        대대익선(大大大益善)? 압도적으로 커진 TV

        TV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디스플레이의 크기 자체가 커져갔다. 브라운관 TV로는 20인치대에서 30인치 초반까지만 제품화 되었으며, 더 큰 TV를 만들기 위해서 프로젝션형이나 PDP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적용되었다.  LCD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노트북에나 사용되던 기술로 화면이 커질수록 액정 주입에 많은 시간이 걸려 대화면을 만들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액정적하 공법(ODF: one drop filling)의 도입과 일본을 앞지르는 과감한 투자로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LCD 천하 시대를 열게 된다.

        LG전자-LG디스플레이,_세계최초_‘105형_곡면_울트라HD_TV’_공개

        2014년에 LG전자,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세계최초의 ‘105형 곡면 울트라HD TV’

        이제는 1인치급부터 100인치가 넘는 디스플레이까지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LCD의 얇고 가벼운 폼팩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LCD와 치열하게 경쟁하던 PDP는 아쉽게도 대형 TV라는 제한된 시장에서 소비전력과 무게로 고전하다가 사라지게 된다. 대규모 투자로 저렴해지고 보편화된 LCD는 다양한 제품이 생활 속에 파고들게 된다. 브라운관 시절의 TV와 모니터뿐이었던 디스플레이 시장이 지금은 노트북, 휴대폰, 차량용 네비게이션, 태블릿, 전자사전, 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었다. 또, 엘리베이터, 지하철, 버스 등에서 공공용 및 상업 광고용으로도 활용되는 등 그 활용의 범위는 끝이 없다.

         

        모두가 꿈꿔온 디스플레이 ‘OLED’

        지금 주목받는 유기발광 다이오드(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라 불리는 기술은 브라운관, PDP가 진공을, LCD가 액체 상태의 액정을 활용한 기술임에 비하여 고체 상태의 소자를 이용한 기술로, 그 형태의 제약이 적은 디스플레이 기술로 초기 연구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겠지만 투명하고,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OLED 소재이기에 가능하다.

        LG전자의 초(超)프리미엄 가전 'LG 시그니처' OLED TV

        LG전자의 초(超)프리미엄 가전 ‘LG 시그니처’ OLED TV

        OLED기술은 시장 초기에는 폴더폰 외부창에서 사용되던 1인치 내외의 PMOLED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와치에 사용되는 중소형에서부터 80인치에 달하는 OLED TV까지 넓은 제품 영역을 커버하고 있으며 투명한 특성, 거울과 같은 특성, 유연한 특성을 무기로 디스플레이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기술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디스플레이 전방산업, 후방산업의 역할은?

        제목 없음이제는 자동차에도 디스플레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c) 르노삼성 SM6 홈페이지

        이제는 자동차에도 디스플레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c) 르노삼성 SM6 홈페이지

        LCD와 OLED산업에서 모두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디스플레이 산업은 패널 산업 홀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후방 산업과 TV, 모니터, 휴대폰 등 디스플레이 패널을 활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전방 산업이 함께 경쟁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다. 브라운관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브라운관에 필요한 유리벌브, 편향요크 코일, 전자총 등 후방산업과 TV, 모니터 등을 생산하는 전방산업이 함께 성장해왔으며, 후방산업과는 공동개발을 통해 완전 평면 TV 등을 개발하며 경쟁국인 일본을 따돌렸다.

        후방산업_유리기판, Driver IC, 액정소재, 컬러필터, 백라이트유닛, 편광판, 광학필름, 유기 발광 수송재료, 봉지재료, 제조장비, 검사장비/ 디스플레이_LCD, OLED/ 전방산업_텔레비전, 모니터, 노트북, 스마트 폰, DID, 웨어러블디바이스, VR

        LCD에서는 광원인 백라이트 유닛과, 다양한 광학 필름, 컬러필터, 구동IC 등의 산업이 후방산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TV, 모니터를 포함한, 휴대폰, 노트북이나 태블릿, 네비게이션시스템, 등으로 다양해진 산업이 전방산업이라 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제품을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 꽃을 피우는 전방산업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디스플레이 후방 산업은 디스플레이의 화질을 포함하여 전기적, 광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생산 방식 및 생산성, 결국 가격 경쟁력까지 결정짓는 등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국가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초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개념적인 설명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다.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익명
          학창시절 주말이면 서울 세운상가에 가서 진공관을 몇천원씩 사갖고 시골로 내려오곤 하였는데 추억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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